사이림지 (西琳寺)
- 소재지 : 오사카(大阪)부 하비키노(羽曳野)시 후루이치(古市) 2-3-2
- 연락처 : ☎072-858-2125, FAX 072-859-0574
사이림(西琳)사 약기에 의하면, 제29대 킨메이(欽明)천황 기원의 킨메이(欽明)13년 건립 「무카이하라(向原)절」(주)이고 일본에서 최초의 불교행사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몹시 유서 있는 절에서 후에 사이림(西琳)사가 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 후 쇼오토쿠타이시(聖德太子)의 권설에 의해 왕인박사의 후예인 카와치(河內)의 문씨가 킨메이(欽明)천황을 위해 조립되었습니다. 사이림(西琳)사 출토 기와 등에서 아스카(飛鳥)시대의 창건과는 거의 확실히 되어 있다. 덴페이(天平)15년의 류기자재장에 의하면, 금당. 강당,오층탑,복도,종당,식당. 승방 등 칠당대가람이었던 것을 안다.
원래 사이림(西琳)사는 하비키노(羽曳野)시 후루이치(古市)의 중앙 타카노(高野) 가도와 타케우치(竹內) 가도의 교차하는 요지의 곧 북동에 있던 절에서 오진(應神)조에 귀화한 학자 왕인박사인 자손 카와치(河內)문씨 일족의 명복을 위한 절에서 덴무(天武)7년에는 칠당대가람이 완성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동서1정(약109m), 남북2정(약218m)의 사역을 가져 법기절식의 가람 배치였지만, 노부나가(信長)의 시대(덴쇼(天正)년간)의 병화나 메이지(明治)가 폐불에 의해 대부분을 잃어 버렸다. 현재는 새로운 고보(御坊)가 지어지고 있어 한 때의 대가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만, 당시의 유물로서 오층탑의 심초가 뜰의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어 그 중량은 27톤과 탑초로서는 아스카(飛鳥)조 양식 최대의 것이 큰 사원으로 자취를 전하고 있다. 또 찰(刹)의 글자는 일본에서 달리 예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주)무카이하라(向原)사는 나라(奈良)현의 아스카무라(明日香村)에 있다. 이 사이림(西琳)사와 나라(奈良)현의 무카이하라(向原)사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명이지만, 이 사이림(西琳)사의 초시로서 쓰여져 있기로 주목해 싶다고 생각한다.
원래 사이림(西琳)사는 하비키노(羽曳野)시 후루이치(古市)의 중앙 타카노(高野) 가도와 타케우치(竹內) 가도의 교차하는 요지의 곧 북동에 있던 절에서 오진(應神)조에 귀화한 학자 왕인박사인 자손 카와치(河內)문씨 일족의 명복을 위한 절에서 덴무(天武)7년에는 칠당대가람이 완성했다고 생각되고 있다. 동서1정(약109m), 남북2정(약218m)의 사역을 가져 법기절식의 가람 배치였지만, 노부나가(信長)의 시대(덴쇼(天正)년간)의 병화나 메이지(明治)가 폐불에 의해 대부분을 잃어 버렸다. 현재는 새로운 고보(御坊)가 지어지고 있어 한 때의 대가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만, 당시의 유물로서 오층탑의 심초가 뜰의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어 그 중량은 27톤과 탑초로서는 아스카(飛鳥)조 양식 최대의 것이 큰 사원으로 자취를 전하고 있다. 또 찰(刹)의 글자는 일본에서 달리 예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주)무카이하라(向原)사는 나라(奈良)현의 아스카무라(明日香村)에 있다. 이 사이림(西琳)사와 나라(奈良)현의 무카이하라(向原)사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명이지만, 이 사이림(西琳)사의 초시로서 쓰여져 있기로 주목해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