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왕인박사 묘
- 소재지 : 오사카(大阪)부 히라카타(枚方)시 후지사카히가시(藤阪東)정 2
- 연락처 : 왕인총환경수호회 사무국 요시토메 가즈오(吉留 一夫) ☎ 072-859-2712
후지사카(藤阪)의 산중에 귀신묘라고 불리는 1개의 자연석이 있고 치통이나 학질에 영검이 있었습니다.
1616년 가도노(禁野)마을 와다데라(和田寺)의 도슌(道俊)은 왕인의 자손이라고 말하고『왕인 분묘 내조기』를 쓰고 후지사카(藤阪)마을 오하카다니(御墓谷)의 귀신묘는 왕인묘가 변핬던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1731년 교토(京都)의 유학자 나미카와 고이치로(竝川五一朗)는 도슌(道俊)의 책을 근거로 이 돌을 왕인묘로 숭경하도록 당지의 영주 구가이 쇼준(久貝正順)에게 진언하고 돌의 뒤쪽에 묘비가 세웠습니다. 이렇게 귀신묘는 왕인묘에 변했습니다.
또 1827년 아리스가와(有栖川)궁가의 부하 이에무라 마고에몬(家村孫衛門)은 이 경내에 아리스가와(有栖川)궁 염필이 된「박사 왕인분」의 비석을 건립했다. 1938년 5월 11일 현창 규칙에 의한 사적에 지정, 1993년 문화재보호 조례에 의한 사적에 지정. 왕인박사는 4세기말에 백제에서 도래하여「논어」10권「천자문」1권을 가져오셨다. 고대부터 학문의 선조로서 숭배됐다. 자손은 문필로 조정에 섬기고 하비기노(羽曳野)시 후루이치(古市) 사이린지(西琳寺)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다.
1616년 가도노(禁野)마을 와다데라(和田寺)의 도슌(道俊)은 왕인의 자손이라고 말하고『왕인 분묘 내조기』를 쓰고 후지사카(藤阪)마을 오하카다니(御墓谷)의 귀신묘는 왕인묘가 변핬던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1731년 교토(京都)의 유학자 나미카와 고이치로(竝川五一朗)는 도슌(道俊)의 책을 근거로 이 돌을 왕인묘로 숭경하도록 당지의 영주 구가이 쇼준(久貝正順)에게 진언하고 돌의 뒤쪽에 묘비가 세웠습니다. 이렇게 귀신묘는 왕인묘에 변했습니다.
또 1827년 아리스가와(有栖川)궁가의 부하 이에무라 마고에몬(家村孫衛門)은 이 경내에 아리스가와(有栖川)궁 염필이 된「박사 왕인분」의 비석을 건립했다. 1938년 5월 11일 현창 규칙에 의한 사적에 지정, 1993년 문화재보호 조례에 의한 사적에 지정. 왕인박사는 4세기말에 백제에서 도래하여「논어」10권「천자문」1권을 가져오셨다. 고대부터 학문의 선조로서 숭배됐다. 자손은 문필로 조정에 섬기고 하비기노(羽曳野)시 후루이치(古市) 사이린지(西琳寺)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