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당 (南海堂)
고려 현종 때부터 바다와 관련된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강원도 동해의 동해묘와 서해의 황해도 풍천에 서해신사와 함께 우리나라 삼대 해신제중의 하나로 터가 남은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해당의 규모는 「증보문헌비고」사전(祀典)에는 1028년(현종 19) 대사(對祀)로 규정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본래 남해당은 국사로서 중사(中祀)에 속하였으며, 나주목사가 주관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남해당의 규모는 「증보문헌비고」사전(祀典)에는 1028년(현종 19) 대사(對祀)로 규정하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본래 남해당은 국사로서 중사(中祀)에 속하였으며, 나주목사가 주관하여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 8대 현종의 친송정책으로 거란이 침입하게 되었는데, 현종이 당시 나주군 종면 옥야리 산1005번지, 현 남해당(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피란하고 세자는 옥야리 산915-1번지 치차산에 피란하던 중 남해신이 나타났는데, 남해신은 현종에게 선몽하기를 '빨리 피신하라!' 해 깨어본즉 가득했던 바닷물은 빠지고 갯벌만 남아 현종이 급히 무안군 일로면 현재 몽탄(夢灘)리 나루터를 건너가 옥체를 구하고 종묘사직을 보존하게 돼 감사의 뜻으로 오늘날의 남해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일제침략기 때 중단되었다가, 이후 현재는 2001년 영암군에서 남해당을 복원하고, 2003년부터 봄·가을로 제를 모시게 해서 제례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매년 3월, 11월에 제(祭)를 모시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침략기 때 중단되었다가, 이후 현재는 2001년 영암군에서 남해당을 복원하고, 2003년부터 봄·가을로 제를 모시게 해서 제례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매년 3월, 11월에 제(祭)를 모시고 있다. 전라남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