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 : 왕인(王仁)박사 유적은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지에는 왕인박사 사당과 전시관, 탄생지, 문산재, 양사재, 책굴, 지침바위, 왕인석상등이 있다.
상대포
소재지 : 서구림리 상대
현 상 : 왕인(王仁)박사가 a.d 405년에 일본으로 떠났다고 전해지는 포구로서 삼국시대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구였다. 왕인(王仁)에 관한 기록은 「日本書紀」와「古事記」에 전해지고 있다. 특히 「古事記」에는 논어 10권, 천자문 1권, 대장장이 베짜는 사람과 함께 왔다는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구림도기가마터 (사적 제338호)
소재지 : 서구림리 319번지(남송정)
현 상 : 유적은 8~9세기 대규모 도기 제작장으로 1986,1996년 이화여대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하면서 그 역사적 중요성이 밝혀졌다. 이곳은 원래 서남해로 연결되는 곳으로서 운송이 편리하고 주변에 좋은 질의 점토와 땔감이 풍부하여 도기 생산지로서 알맞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동서 1㎞ 구릉에 걸쳐 10여개의 도기가마터가 있다. 요구조는 아래쪽에서 경사면을 이용해 굴을 파고 들어 간 반지하식 단실가마로 요상평면은 밑부분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독사머리형이다. 출토도기는 돌대장식대호, 사각편병, 주판알 모양의 유병등 일상생활용 도기와 시유도기가 출토 되었다. 특히 시유도기는 한국 도자사상 처음으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어 「구림도기」로 명명하게된 중요한 유적이다.
정원명석비 (문화재자료 제181호)
소재지 : 군서면 서구림리 485번지
현 상 : 전남에 소재한 금석문중 연대가 가장 오래된 비로 통일신라시대(786년)에 제작된 비다. 1995년 구림 모정간 농어촌 도로공사시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높이 128㎝, 너비28㎝, 두께 27㎝ 자연석을 약간 다듬은 기둥형으로 전면에 음각되어 있다. 글자는 당 연호인 貞元(786년 원성왕 2년)을 포함하여 세로 총42자 4행 행서체로 새겨져 있다.
국사암 (國師岩)
소재지 : 서구림리
현 상 : 도선(道詵)국사(827∼898) 관련 탄생설화 바위이다. 통일신라말의 승려인 도선(道詵)은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시조로서 그의 사상은 나쁜 땅도 보완하면 명당이 된다는 비보 풍수지리사상이다. 도선(道詵)국사는 구림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하여 846년(문성왕 8) 23세에 혜철대사(곡성 동리산파)의 곡성 태안사 선문에 들어가 구족계를 받았다. 875년(헌강왕1)에 고려건국을 예언하였으며, 880년(헌강왕6)에 道岬寺를 창건하였다. 898년(효공왕2) 세수 72세로 입적하였다.
국암사 (國巖祠)
소재지 : 서구림리
현 상 : 1970년에 지은 낭주최씨 문중사우로 별박사 최지몽을 비롯 4분을 배향하고 있다. 정면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간죽정
소재지 : 서구림리 403번지
현 상 : 박성건이 1479년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 교화를 위해 세운 정자로 간죽정 연혁비를 보면 4차례의 중수 기록이 보인다. 3미터 잡석 축대위에 정동향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이다.
회사정 (會社亭)
소재지 : 서구림리 서호정
현 상 : 대동계의 집회소로 지어져 정유재란과 6.25 전쟁 소실등 으로 몇차례의 중수와 복원을 거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각지붕 정자이다.
대동계(大洞契) 문서 (문화재자료 제198호)
소재지 : 서구림리 329번지
현 상 : 구림 대동계는 서호동계로 운영되었던 里社 조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명종 20년(1565) 상·하계를 합쳐 향약정신을 구현,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하였다. 연혁지에 의하면 1614년 계약 9강목 (喪葬相賻, 患難相救, 過失相規, 補米收合, 講信修睦, 有司擇定, 後入行禮, 有罪黜?, 補米收合時 遷延者笞 罰)으로 시작하여 계약 당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수정,추보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동계자료(16점)들은 17세기 동계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 주는 자료로 조선시대 동계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죽림정(竹林亭)
소재지 : 서구림리 385번지
현 상 : 현징(호 죽림 1629-1702)이 벼슬을 버리고 귀향해서 지은 정자로 정자의 원형은 내동리에 있던 취음정을 현징과 종형이 이축하였다. 건립 연대는 상세하지 않으나 죽림정이란 우암 송시열의 편액과 문곡 김수항의 죽림정기가 1678년(숙종4)에 쓰여진 것으로 보아 이 기간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4기둥에 활주가 받쳐져 있다.
죽정서원(竹亭書院)
소재지 : 서구림리 403번지
현 상 : 1681년(숙종7) 향내 유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오한 박성건(1418-1487)을 주벽으로 그의 아들 박권 (1465-1506), 1683년 박규정(1493-1580), 1726년 이만성(1659-1723), 1835년 박승원을 추배하여 제향하고 있다.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 되었으나 1961년 중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배치는 외삼문을 들어가 좌측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강당이다. 외삼문 밖 오한 박성건의 간죽정이 정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총취정(叢翠亭)
소재지 : 서구림리 331번지
현 상 : 1943년 조행립(1580-1663)을 기념하기 위해 서호사 앞 우측에 건립되었다. 편액은 6.25 당시 소실되었다가 1985년 복원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이며 뜰에는 조행립의 사적비가 있다.
조종수 가옥 (도민속자료 제35호)
소재지 : 남송정 332번지
현 상 : 조씨 문중의 종가로 조선시대에 건립되어 1864년 중수하였다. 정면 문 3개만 교체하였을뿐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지방의 일자 평면형 팔작지붕으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으로 배치되어 있다.
덕성당 (德星堂)
소재지 : 서구림리 26번지
현 상 : 낭주최씨 문중 제각으로 창건주, 연대가 확실치 않다. 고려태사 민휴공 최지몽(907-987)을 기리기 위해 1977년에 세운 유적비가 있다. 그 옆에 1972년 창건한 국암사(國岩祠)가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재실형 건물이다.
민속자료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자시경에 남송정에서는 별신제, 서호정에서는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제는 구림마을이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있기 때문에 농사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의식은 정초에 마을 어른들이 먼저 제관을 뽑고, 제를 지낼 당산에는 3일전에 왼새끼로 꼰 금줄을 쳐 부정한 사람의 접근을 막아 신성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