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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 월산사지

  • 소재지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617-2 외
  • 지정분류문화유산자료

영암 월산사지는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시대 건물지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건물지와 월산대군과 인수왕비 등 왕실 후원자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 왕실을 기반으로 한 사찰중창의 배경, 사찰 조영의 계획, 조성과정 등을 밝힐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월산사지는 세차례 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10동과 부석시설, 석축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초기 월산대군과 관련된 유물의 출토와 관련 기록은 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이다.
발굴(시굴)조사는 세차례에 걸쳐 실시하였는데, 1차는 사지의 윗 부분, 2차와 3차는 사지의 아랫 부분을 대상으로 하였다. 2차 조사는 시굴조사한 지역(500㎡)을 대상으로 3차 발굴조사를 하였다.
1차 발굴조사를 통하여 건물지 1동, 부석시설, 석축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주변에 더 많은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중심 건물지로 판단되는 부분과 사찰의 규모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지표상에서 확인된 사찰의 규모는 남북 폭이 34m, 동서폭이 48m 범위이다.
중심건물지는 조선초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는 측면이 약 660㎝, 정면 980㎝로 측면 좌우 협칸이 좁은 장방형이다.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종합해 본 결과 15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월산대군과 관련한 불사로 번창한 사찰로 판단된다. 또한 중심건물지 하부는 고려시대 문화층이 노출되어 와편과 청자편이 출토되고 있어 차후 조사의 필요성이 있다.
월산사지 중심 건물지 조성 당시 월출산 일대는 세조의 왕사인 수미대사가 국가의 지원 속에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도갑사, 무위사 등이 번창하였음을 자료로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건물지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 중, ‘수빈궁’, ‘월산군’, ‘을유’, ‘정유’명 등을 통해 15세기 중후반대인 세조~연산군년간에 불사가 이루어져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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