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조선 중기 명장 양무공 김완(1577∼1635) 장군의 묘소이다.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박세채가 글을 짓고 조명교가 글씨를 쓴 것이다.
광해군 7년(1615)에 과거급제하여 고산진절제사 등을 거쳐 황해도 병마절도사에 올랐고, 여러 공이 인정되어 죽은 후 병조판서로 벼슬이 높여졌다.
임진왜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 이복남 장군 아래에서 용맹을 떨쳤고, 인조 12년(1624)에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묘는 원래 해남면 동북선산에 있던 것을 숙종 44년(1718)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묘역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는 박세채가 글을 짓고 조명교가 글씨를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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