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의 금석문 _ 정원명 석비(매향비)
영암정원명석비(靈巖貞元銘石碑) 문화재자료 제181호 - 통일신라시대 埋香碑
정원명 석비는 전남에 소재한 금석문(金石文)중 시기가 가장 최고의 것이다. 겉 모양은 자연석으로 약간 다듬은 기둥형이며, 글자는 전면에만 음각으로 명문되어 있다. 자체는 세로로 쓴 행서체로 총 4행이며, 마을 골목길을 정리하다 발견하였던 것으로 현재는 최정호(崔正浩)씨 집에 옮겨져 있다.
글자수는 총 42자로 현재 파악할 수 있는 것과 추정되는 글자들은 다음과 같다.
제1행 :정원이년내인오월십일자평행향장내불망(貞元二年內寅五月十日자坪行香藏內不忘)
제2행 :입처유주범세구합향십속(立處有州梵歲口合香十束)
제3행 :입구오인명력지
제4행 :인개(仁開)
글자체는 세로로 쓴 행서체로 총 4행이며, 글자수는 총 42자로 제1행 :정원이년내인오월십일자평행향장내불망(貞元二年內寅五月十日자坪行香藏內不忘), 제2행 :입처유주범세구합향십속(立處有州梵歲口合香十束), 제3행 :입구오인명력지언생우(入口五人名力知焉生右), 제4행 :인개(仁開)이다.
특히 제1행의 당나라 연호 정원 2년은 786년(통일신라 원성왕 2)으로 전남의 금석문 중 지금까지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며, 아직 전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아 확실한 성격은 규명할 수 없으나, 일부 내용중에 합향 · 향장 등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보이고 있어 불교와 관계된 매향비 성격으로 보아 월출산 지역 향도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만일 비문이 매향비라면 도선국사 생존연대(827∼898년)보다 상한하는 불교문화 유산이므로 앞으로 이 금석문은 학술적으로 철저히 규명되어야 하며, 문화재 자료 이상의 보존 방안이 시급한 금석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