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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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철, 2006, 〈해동제국기의 역사지리학적 연구 : 「일본국기」와 「유구국기」의 來朝기사를 중심으로〉, 《인문과학》 15,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저자 : 손승철   |   번역자 :   |   유형 : 기타( 논문 )   |   쪽수 : 49 (275-323)   |   총권수 : 권
손승철, 2006, 〈해동제국기의 역사지리학적 연구 : 「일본국기」와 「유구국기」의 來朝기사를 중심으로〉, 《인문과학》 15,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이미지 1

『海東諸國記』는 일본의 지세ㆍ국정ㆍ풍속ㆍ來朝記事 및 朝聘應接紀 등을 기록한 것으로, 1471년에 申叔舟에 의해 편찬되었다. 이글에서는 『해동제국기』의 「日本國紀」와 「琉球國紀」에 수록된 내조기록을 중심으로 『해동제국기』의 역사지리학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日本國紀」〈天皇代序〉에는 8건의 기사가 있다. 320년 백제에서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것부터 시작되며, 고대 삼국과의 교류는 백제, 신라, 고구려 순으로 전개된다. 이 점은 종래 405년을 전후해 일본에 파견된 王仁博士에 의해 유교 및 백제문화가 전수되었다는 기존학설과는 사뭇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천황대서〉에서는 단 8건의 기사만 기록했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우호교린을 해야 한다는 기본입장에서, 교류의 시원이 한반도로부터의 사신파견과 문화전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八道六十六州〉의 내조기사는 기내 5주에 거주하는 幕府將軍 이외의 8명의 영주들이 巨酋使의 대우를 받으며 내조한 내용이다. 최초의 내조는 1408년부터지만, 대부분은 1460년대부터 1470년의 기록이다. 조선에서는 이들 내조자들에게 線布ㆍ正布ㆍ쌀과 콩을 주었고, 이들은 특산물로 구리ㆍ염료 등을 가져왔다. 8도 가운데는 지금의 규슈지역이 제일 많았다. 하카다[博多]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동아시아 해역의 국제무역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8도의 내조자 가운데 특이사항으로는 觀音菩薩 現身을 치하와 對馬島主 宗貞國의 역할이 있다. 세조의 왕권강화책과 그것을 역이용하는 내조자들과 대마도주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對馬島〉의 내조기사에서는 수직인과 수도서인, 세견선약정과 세사미에 대해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대마도의 모습을 상세히 기술했다. 또한 대마도내의 모든 내조자가 거주하고 있는 浦口 및 戶數를 상세히 기록했고, 특히 왜구와 관련해서는 海賊大將이나 魁首라는 표현을 썼다. 倭寇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해동제국기』의 내조기사를 통해, 당시 조선에 온 일본인들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이 왔고, 또 무슨 목적에서 어떻게 내왕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분석할 수는 좋은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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