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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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섭, 2012, 〈왕인 관련 사료와 전승 검토〉, 《한국교육사학》34권2호, 한국교육사학회.

편저자 : 박균섭   |   번역자 :   |   유형 : 기타( 논문 )   |   쪽수 : 24 (25-48)   |   총권수 : 권
박균섭, 2012, 〈왕인 관련 사료와 전승 검토〉, 《한국교육사학》34권2호, 한국교육사학회. 이미지 1

왕인은 백제와 고대 일본의 문화 교류사에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사실상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요즘 믿고 있듯이, 왕인이 전라남도 영암군 출생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더욱 거론된 바 없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왕인은 식민 교육의 필요에 따라 유달리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도선국사에 관한 전승이 왕인에 관한 전승과 뒤섞이는 현상도 발생하였다. 그만큼 왕인은 내선일체 이데올로기의 현창과 실천에 적합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해방 이후, 식민 교육적 배경을 갖고 있는 왕인 전승에 대해 이에 대한 성찰과 극복 없이 자의적인 방식의 기념과 계승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1970년대에 들어 왕인은 주체성 교육의 일환으로 현창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전라남도 영암군에서는 해마다 왕인을 기리는 영암왕인축전을 치르고 있다. 왕인 담론에는 이렇게 역사적 성찰이 결여된 채 기념비의 정치학이 개입되어있다. 동화 정책과 식민 교육의 소재로 활용되었던 왕인은 한때 민족 자긍심 함양과 주체성 교육을 위한 인물로 주목 받다가 이제는 특정지역의 문화적 기획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Wang In is known as the key person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ancient Japan and Baekje. As a matter of fact, Wang In has not well known us until the late Chosen Dynasty. Besides we firmly believe his birthplace, it was not treated of he was born in Yeongam Jeollanamdo provin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al period, Wang In has been extraordinarily emphasizing on the needs of colonial education. At this time the legend of grand master Doseon and doctor Wang In were mixed. Wang In is an emblem of person for exposing the ideology of nae-seon-il-che which is the integration of Korea and Japan. From the 1970s to recent times, Wang In has been exposing as a part of the national identity education. Specially, there is an event Yeongam Wan In culture festival to applaud Wang In in Yeongam Jeollanamdo province. It is lacked of historical reflection about Wang In discu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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