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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승철, 2007, 〈해동제국기의 사료적 가치〉, 《한일관계사연구》 27, 한일관계사학회.

편저자 : 손승철   |   번역자 :   |   유형 : 기타( 논문 )   |   쪽수 : 35 (3-37)   |   총권수 : 권
손승철, 2007, 〈해동제국기의 사료적 가치〉, 《한일관계사연구》 27, 한일관계사학회. 이미지 1

1. 머리말 2. 신숙주의 대일본관 3. 내조기사의 특징 4. 조빙응접기의 규정 5. 맺음말 『海東諸國紀』는 일본의 지세?국정?풍속?來朝記事 및 朝聘應接紀 등을 기록한 것으로, 1471년에 申叔舟에 의해 편찬되었다. 이 글에서는 『해동제국기』의 〈日本國紀〉와 〈琉球國紀〉에 수록된 내조기록을 중심으로 해동제국기 의 사료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日本國紀」〈天皇代序〉에는 8건의 기사가 있다. 320년 백제에서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것부터 시작되며, 고대 삼국과의 교류는 백제, 신라, 고구려 순으로 전개된다. 이 점은 종래 405년을 전후해 일본에 파견된 王仁博士에 의해 유교 및 백제문화가 전수되었다는 기존학설과는 사뭇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八道六十六州〉의 내조기사는 기내5주에 거주하는 幕府將軍 이외의 8명의 영주들이 巨酋使의 대우를 받으며 내조한 내용이다. 최초의 내조는 1408년부터지만, 대부분은 1460년대부터 1470년의 기록이다. 조선에서는 이들 내조자들에게 綿布?正布?쌀과 콩을 주었고, 이들은 특산물로 구리·염료 등을 가져왔다. 〈對馬島〉의 내조기사에서는 수직인과 수도서인, 세견선약정과 세사미에 대해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되어 있는 대마도의 모습을 상세히 기술했다. 또한 대마도내의 모든 내조자가 거주하고 있는 浦口 및 戶數를 상세히 기록했고, 특히 왜구와 관련해서는 海賊大將이나 魁首라는 표현을 썼다. 倭寇에 대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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