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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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행주, 2015, 〈일본고대국가와 백제계 도래인-특히, 백제계 문필(史姓)씨족의 활동과 역할을 중심으로-〉, 《韓日關係史硏究》52, 한일관계사학회.

편저자 : 나행주   |   번역자 :   |   유형 : 기타( 논문 )   |   쪽수 : 58 (3-60)   |   총권수 : 권
나행주, 2015, 〈일본고대국가와 백제계 도래인-특히, 백제계 문필(史姓)씨족의 활동과 역할을 중심으로-〉, 《韓日關係史硏究》52, 한일관계사학회. 이미지 1

1. 머리말 2. 일본고대의 역사ㆍ문화와 외적 계기 3. 일본고대국가의 형성ㆍ전개와 백제계 도래인의 역할 4. 맺음말 일본고대국가의 성립・전개과정에 있어서 한반도제국 및 중국왕조와의 정치적 교류교통이 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4세기에 탄생한 야마토(大和)국가는 701년에 편찬된 다이호(大寶)율령에 의해 율령국가로서 완성되었다고 이해된다. 그런데 그 전사로서의 기나이(畿內) 야마토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형성과정, 즉 4세기 이래의 지배권의 확립 및 지배체제 구축과정, 5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府官制와 人制, 部民制, 屯倉制, 國造制, 官位(衣冠)制 등 각종 국가체제・제도 등의 정비 및 확립, 그리고 율령국가로의 전환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어 특히 한반도제국과의 정치적 교류교통관계가 커다란 역할과 의미를 지녔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본고는 일본고대의 국가형성기에서 완성기에 해당하는 5세기~7세기를 대상으로, 東漢씨로 대표되는 민간차원의 도래에 의해, 혹은 阿直岐와 王仁박사로 상징되는 백제와 야마토 왕권의 정치적 동맹관계에 기초한 국가적・정책적 차원의 파견・증여에 의한 결과로서, 백제지역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일본고대국가의 형성・전개・완성과정에서 어떠한 활동과 역할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그 일단을 추구해 보았다. 특히, 본고에서는 고대일본의 역사에 있어서 문명화의 상징인 문자(한자)문화를 주도하고 고대국가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그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문서행정을 담당한 도래계 집단의 역할에 초점을 두었다. 그 주인공은 후미히토・후히토(書人・文人・史)라 칭해지는 왜 왕권 내의 문서・문필업을 담당하는 주체인 史姓씨족=史部집단이다. 이들 사부집단은 5세기 초에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의 후예씨족인 西文首씨와 아지사주(阿知使主)의 후예씨족인 東文直씨를 중핵으로 성립되었고, 여기에 阿直岐의 후예씨족인 阿直(安勅)史씨 및 6세기에 최신의 문자문화를 가지고 도래한 왕진이(王辰爾)와 그 일족(船씨, 津씨, 白猪=葛井씨)이 더해짐으로써 보다 조직적・체계적으로 정비되었는데, 물론 그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백제계 도래인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 史姓씨족=史部집단의 활동을 중심으로, 특히 5-7세기 왜국의 지배체제・국가제도의 성립 및 운영과정에 있어서 백제계 도래인들이 담당했던 역할과 활동내용을 검토해 보았다. 우선, 일본고대에서 문필업을 담당한 주체인 사부집단=사성씨족의 구성과 특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동서사부(東西史部)와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았고, 일본고대국가의 내정과 외교에 있어서 불가결한 외교문서의 작성 및 국내정치에서 필요한 문자문화(기록과 문장)의 실질적인 담당 주체의 문제를 에다후나야마(江田船山)고분 출토 대도명의 작성자인 「서자장안(書者張安)」과의 관련성 속에서 검토해 보았다. 다음으로,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친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정 속에서 국가체제 유지의 근간이 되는 선진적인 지배체제・통치제도의 성립(도입)・운영과정에서 담당한 백제계 도래인의 역할과 의미를 5세기의 부관(府官)제 및 인(人)제・편호(編戶)제의 시행, 6세기의 부민(部民)제와 둔창(屯倉)제, 7세기의 관위(官位)제와 승강(僧綱)제 등과의 관련성 속에서 확인했다. 나아가, 왜국에 있어서 왕권 및 국가에 관한 공식적인 역사의 기록화, 즉 사서의 편찬문제와 아울러 일본고대국가의 완성체인 율령 편찬 과정에서의 백제계 도래인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일본고대국가 성립과정 속에서 행한 백제계 도래인들의 구체적인 활동내용은 물론, 그들이 일본고대국가형성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확인되었으리라 생각한다.

日本古代國家の成立・展開過程において、韓半島諸國及び中國王朝との政治的交流交通は不可缺な要素として作用している。4世紀に生まれた大和國家すなわち日本古代國家は、701年編纂の大寶律令によって律令國家として完成したと理解される。ところで、その前史としての畿內を基盤とした大和王權を中心とする國家形成過程, つまり4世紀以來の支配權の確立及び支配體制の構築過程、5世紀から7世紀にいたる府官制と人制、部民制、屯倉制、國造制、官位(衣冠)制など、各種の國家體制・制度の整備と確立、そして律令國家への轉換過程を理解するにおいて、特に韓半島諸國との政治的交流交通關係が大きな役割と意味を持ったことは、誰しも否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 本稿は日本古代の國家形成期から完成期に当る5世紀~7世紀を對象として、東漢氏に代表される民間次元の渡來によって、あるいは阿直岐と王仁博士に象徵される百濟と大和王權との政治的同盟關係に基づいた、國家的・政策的次元の派遣・贈與による結果として、百濟地域から日本列島へ渡った渡來人たちが、大和王權との密接な關聯性のなかで、日本古代國家の形成・展開・完成過程において、どのような活動や役割を果たしたのか、そしてその歷史的意味はなにか、その一端を追究したものである。 特に、本稿では古代日本の歷史において、文明化の象徵である文字(漢字)文化を主導し、かつ古代國家體制を維持するにおいてその根幹ともいえる文書行政を擔當した、渡來系集團の役割に焦點をおいた。その主人公は、フミヒト(書人・文人・史)と稱する、大和王權內の文書・文筆業を擔當する主體である史姓氏族=史部集團である。これら史部集團は、5世紀の初めに百濟から渡ってきた王仁博士の後裔氏族である西文首氏と、阿知使主の後裔氏族である東文直氏とを中核として成立し、これに阿直岐の後裔氏族である阿直(安勅)史氏、及び6世紀に最新の文字文化をもって渡來した王辰爾とその一族(船氏, 津氏, 白猪=葛井氏)が加わって、より組織的・體系的に整備された。勿論、その構成や運營においても百濟系渡來人たちがその中心をなしたのである。 したがって本稿では、この史姓氏族=史部集團の活動を中心に、特に5-7世紀における倭國の支配體制・國家制度の成立および運營過程において、百濟系渡來人たちが擔當した役割や活動內容を檢討した。まず、日本古代において文筆業を擔當した主體である史部集團=史姓氏族の構成や特徵について、東西史部との關聯のもとで検討してみた。また、日本古代國家の內政や外交において不可缺な外交文書の作成、および國內政治で必要な文字文化(記錄と文章)の實質的な擔當主體の問題を、江田船山古墳出土大刀銘の作成者である「書者張安」と關聯して檢討してみた。つぎに、5世紀から7世紀にかけた日本古代國家の形成過程のなかで、特に國家體制維持の根幹となる先進的な支配體制・統治制度の成立(導入)・運營過程で擔當した百濟系渡來人の役割やその意味を、5世紀の府官制および人制・編戶制の施行、6世紀の部民制や屯倉制、7世紀の官位制や僧綱制などとも關聯して確認した。さらに、倭國における王權および國家に關する公式的な歷史の記錄化、すなわち史書の編纂問題とあわせて、日本古代國家の完成體である律令の編纂過程における百濟系渡來人の役割についても検討した。 以上を通じて、日本古代國家の成立過程において、特に百濟系渡來人およびその後裔たちの具體的な活動內容については勿論、かれらが日本古代國家形成史の中で占める歷史的意味も確かめることが出来たと考え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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