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4차 메뉴 정의

충청남도, 1994, 《百濟의 宗敎와 思想》, 이은창, 王仁 博士의 硏究.

편저자 : 충청남도 / 이은창   |   번역자 :   |   유형 : 기타   |   쪽수 : 14 (397-410)   |   총권수 : 1책권
충청남도, 1994, 《百濟의 宗敎와 思想》, 이은창, 王仁 博士의 硏究. 이미지 1

〈目次〉 1. 序論 2. 王仁의 渡倭 3. 王仁 遺蹟 1) 仁의 誕生地 2) 王仁의 修學處 3) 王仁의 出物浦 4. 技術工의 率往 5. 結論 1. 序論 日本은 先史時代부터 韓國文化를 받아 들였다. 支石墓·石棺墓·풀棺墓 위의 原始墳墓制를 비롯하여 竪穴式住居址와 土器·石器·青銅器等은 韓國 것과 日本 것이 그 樣式上 相通되는 點이 많다. 일찌기 韓國先史文化가 東流하고 彼地 日本 에 韓國文化가 移植成長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서 古墳文化에 있어서도 韓日間에 密接한 關係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日本의 竪穴式石室墳과 橫穴式石室墳의 築造樣式은 마치 韓國의 類例와 恰似하고 또한 日本의 裝飾古墳의 裝飾壁畵는 加耶地域과 新羅地域의 岩刻畵의 影響이며 日本의 高松塚의 壁畵古墳 또한 韓國의 壁畵古墳에 連結되는 것이라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日本의 古墳 副葬品으로서 裝身具·馬具·武具·農工具에 이르기까지 韓國의 古墳 副葬品 그 樣式을 닮았다. 그리고 土器生産에 있어서도 日本의 土師器와 須惠器는 韓國의 軟質赤色土器와 陶質土器의 生産技法의 影響을 받았다. 三世紀後半부터는 우리 韓國과 日本과 사이에 交通이 열리어 韓國文化가 크게 東流하였다. 特히 百濟와의 交涉이 頻繁하였으니 곧 漢文字·儒學·佛敎 等이 東渡하고 또 建築·彫刻.繪畵·工藝 等과 이밖에 各種 學術이 傳受되어 六世紀頃에는 彼地 日本에 飛鳥文化를 形成하기에 이르렀다. 日本의 飛鳥文化가 形成되기 以前에 百濟의 王仁 博士가 千字文과 論語를 가지고 渡倭하여 被地의 文運을 隆盛시키고 마침내 飛鳥文化를 이룩하는 原動力이 되었다. 이 王仁博士의 渡倭 事實이 日本에는 記錄이 있으나 우리 韓國側의 文獻에는 보이지 않고 또 이 王仁 遺蹟과 王仁의 後裔가 日本에는 남아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王仁의 遺蹟과 王仁系 氏族 等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最近에 와서 全羅南道 靈巖郡 月出山 아래에 王仁 遺蹟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靈巖 王仁 遺蹟에 對하여 學界의 關心이 集中된 바 있어서 이에 對한 記事가 新聞과 雜誌 等을 通하여 發表되었다. 또 王仁 博士 顯彰協會가 發足되어서 이제까지 숨어 있었던 王仁 遺蹟이 빛을 보이게 되었다. 마침 王仁 博士 顯彰協會의 招請을 받아 1974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17일간에 걸쳐 現地를 調査하였다. 그리고 많은 資料를 集하였는데 이 資料의 一部를 整理하여 이제 『王仁 博士 研究』라는 題目으로 그 調査結果를 報告하고자 하는 바이다.

의견쓰기

0 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의견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