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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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형광석, 2008, 〈왕인 관련 논저의 분석〉, 《고대 영산강유역과 일본의 문물교류》, 전라남도·사단법인 왕인박사현창협회.

편저자 : 정성일·형광석   |   번역자 :   |   유형 : 기타( 논문 )   |   쪽수 : 35 (199-235)   |   총권수 : 권
정성일·형광석, 2008, 〈왕인 관련 논저의 분석〉, 《고대 영산강유역과 일본의 문물교류》, 전라남도·사단법인 왕인박사현창협회. 이미지 1

왕인박사(王仁博士)에 관한 연구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흔히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고 새롭게 인식하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왕인 문제에 관하여 언제 누구에 의해서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현재 관점에서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왕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본의 사서(史書)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왕인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를 두고 왕인의 실존 여부에 대하여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가 일본에 전했다는 논어와 천자문에 대 하여 이런저런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왕인의 탄생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영암 구림성기동(靈巖 鳩林聖說)'에 대해서도 문헌 고증이 취약하다는 비판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왕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더 나아가서 영암 구림 탄생설'을 뒤엎을 만한 새로운 문헌이 발견된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확실하게 문헌으로 기록된 것만을 역사 사실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지금부터 1,500~1,600년 전의 일을 문헌으로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비교적 현재와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나 광복 전후, 더 나아가 1960년대 산업화 과정의 일도 문헌이 부족한 분야는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면담조사를 통해 얻은 자료에 근거해서 역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 않은가?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른바 구비전승(口碑)도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점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이번 공동연구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된 왕인에 관한 연구를 종합적으로 조사정리하고자 하였다. 먼저 ① 1945년 광복 이전과 ② 1945~1970년대까지, ③ 1980년대 그리고 ④ 1990년대 ⑤ 2000년대로 구분을 하고, 각각의 시기에 어떤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거시적으로 조망하였다. 그런 다음 왕인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그 동안의 연구 내용을 살펴보고,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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