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4차 메뉴 정의

전라남도, 1998, 《文化財圖錄, 1998, 1-3》.

편저자 :   |   번역자 :   |   유형 : 기타   |   쪽수 : 2 (422-423)   |   총권수 : 3권
전라남도, 1998, 《文化財圖錄, 1998, 1-3》. 이미지 1전라남도, 1998, 《文化財圖錄, 1998, 1-3》. 이미지 2

지정 번 호 : 기념물 제20호 소 유 자 : 국 유 소 재 지 :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규 모 : 유적일원 시 대 : 백제시대 지정 연월일 : 1976년 9월 30일 왕인박사 유적은 구림 삼거리에서 월출산 주지봉을 향해 올라가면 해발 350m 되는 곳에 왕인이 출생했다는 성기골과 그가 수학했다는 문산제가 있다. 왕인은 성기동에서 태어나 이곳 주지봉의 정기를 받아 학문이 일취월장하여 유가의 성현이 되었다. 또 이 계곡 흐르는 물은 성천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바위에 '성천' 이라 각해진 글씨가 있다. 그가 일본에 건너갔다는 상대포는 당시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항이었다고 하나 현재는 간척지가 되어 농지로 변형되어 지금은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다. 이 밖에 왕인이 공부했다는 책굴과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뒤 후대인들이 그를 기려 상대포를 향해 새겼다는 석인상이 있다. 1975년 왕인박사유적현창회에서는 이 유적지에 유허비를 건립하여 이곳이 왕인박사 탄생지임을 후대에 남겼다. 선현 왕인은 백제가 낳은 대학자로 지덕을 겸비하였고 일본 응신천황의 초빙을 받아 구수왕의 문화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그들 왕실의 사부가 되었음은 물론 문학과 윤리도덕을 널리 가르쳐 일본 문화사에 신기원을 세웠다. 이런 점에서 왕인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많이 알려진 백제인으로 『일본고사기』, 『일본서기』, 『속일력기』 등에 왕인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 「응신 16년조」에 「16년 춘이월 왕인래지 태자사지 습제전적어 왕인 막불통달…시년백제아화왕…(十六年春二月王仁來之太子師之習諸典籍王仁不通達…是年百濟王)이라 기록되어 왕인이 백제인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왕인박사가 영암 구림에서 출생했다는 내용은 1939년 간행된 『조선환여승람』 「영암성기동조」에 「백제고이왕시 박사왕인생어차(百濟時 博士仁生於此)」란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비록 후대의 기록이긴 하나 왕인의 출생지가 영암 구림인 것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한편 일본에 건너간 연대에 대해서 『일본서기』은 백제 고이왕 52년(285)으로 되어 있으나 『일본서기』에 기록된 백제의 왕명 등으로 보아 백제 아신왕 14년 (405)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인박사유적은 1985년부터 1987년 사이에 정비 사업이 완료되었고 현 유허비 근처에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유물전시관 등이 건립되었으며 주지봉 산록에 문산재, 양사재 등이 새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견쓰기

0 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의견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