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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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필기(林下筆記)』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편저자 : 이유원(李裕元)   |   번역자 :   |   유형 : 기타( 필기 )   |   쪽수 : 일본 여러 학문의 시조   |   총권수 : 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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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한 성제(漢成帝) 하평(河平) 2년(기원전 27), 왜(倭) 수인(垂仁) 3년에 신라 왕자 천일창(天日槍)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는데, 도공 행기보살(行基菩薩)이란 자가 수행하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배감(坏坩 기와를 굽는 가마)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이르기를, “진(晉)나라 태시(太始) 7년(271), 왜 응신(應神) 2년에 백제 왕이 진손(辰孫)을 보내어 일본에 들어가 태자사(太子師)가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서적(書籍)을 전해 주어 유풍(儒風)이 일어났다.” 하였고, 《화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진(晉)나라 태강(太康) 5년(284), 왜 응신 15년에 백제 사신 왕인(王仁)이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오니, 이에 유교(儒敎)가 처음으로 행해졌다.” 하였다. 물부무경(物部茂卿)이 말하기를, “선정(先正) 중에 큰 공덕이 있는 분으로는 왕인씨(王仁氏), 황비씨(黃備氏), 관원씨(管原氏), 성와씨(惺窩氏) 네 군자(君子)이다.” 하였다. 양(梁)나라 승성(承聖) 원년(552), 왜 흠명(欽明) 13년에 백제 성명왕(聖明王)이 사신을 보내어 석가상(釋迦像)과 《번개경론(幡蓋經論)》을 바쳤다. 소아마자(蘇我馬子), 사마달(司馬達) 등이 모두 불도(佛道)를 숭상하니, 이것이 불교 사원의 시작이다. 또 오경박사(五經博士), 의박사(醫博士), 역박사(曆博士) 등을 보내왔다. 《일본기(日本記)》에 이르기를, “진 후주(陳後主) 지덕(至德) 원년(583), 왜 민달(敏達) 12년에 백제 사신 일라(日羅)가 제갈량(諸葛亮) 병법 64진(陣)을 성덕태자(聖德太子)에게 전해 주었다.” 하였다. 《화한삼재도회》에 이르기를, “수 문제(隋文帝) 인수(仁壽) 원년(601), 왜 추고(推古) 9년에 백제 중 관륵(觀勒)이 천문(天文), 지리(地理), 역본(曆本), 둔갑(遁甲), 방술서(方術書)를 바치니, 왕진(王陳)은 역법을 익히고, 고총(高聰)은 천문 및 둔갑을 배우며, 산석(山昔)과 신일(臣日)은 아울러 방술을 배웠다. 수(隋)나라 대업(大業 양제(煬帝)의 연호) 6년(610), 왜 추고 18년에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왔는데, 담징은 오경(五經)에 정통하고 단청(丹靑)에 솜씨가 있었으며, 또 종이와 먹 및 맷돌을 만들 줄 알았으니, 이것이 종이와 맷돌을 만든 시작이다. 수 대업 8년(612)에 백제 미마지(味摩之)가 동부진야신(童部眞野臣)의 제자인 신한(新漢)과 제문(齊文)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두 사람이 그 음악을 전수받았다. 또 이해에 백제국에서 온 번(煩)이라는 사람이 문둥병에 걸려 그 몸이 추하였지만, 긴 다리를 놓는 솜씨가 있어 180개의 다리를 만드니 오가는 도로가 비로소 소통되었다.” 하였다. 《일본실기(日本實記)》에 이르기를, “백제에서 온 하성(河成)이 인물과 초목을 잘 그렸는데, 뒤에 그림을 공부하는 자들이 모두 그에게서 법을 취하였다. 추고(推古) 때에 고려의 사문(沙門) 혜자(慧慈)가 태자사(太子師)가 되어 큰 공로가 있었는바, 백공(百工)이 혜자를 조사(祖師)로 삼지 않음이 없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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