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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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여담(東槎餘談)』 상(上)

편저자 : 남기(南紀) 유유한(劉維翰) 문익(文翼) 편집, 미야세 류몬(宮瀨龍門, 劉維翰)   |   번역자 :   |   유형 : 필담록   |   쪽수 : 1764년   |   총권수 : 2권
『동사여담(東槎餘談)』 상(上) 이미지 1

용문이 말하였다. 이토진사이[仁齋]·오규소라이[徂徠]는 왕양명(王陽明)·육상산(陸象山)을 그릇되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소견이 다르면 각자 문호를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그 학술과 저서는 지금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유자(儒者)들 가운데에는 이 두 사람을 숭상하는 이들도 있고 정주(程朱)를 존중하는 사람도 있으나 왕육(王陸)의 학문을 하는 사람은 극히 적습니다. 천조(天朝)의 진신군자(搢紳君子)들은 지금까지 한당(漢唐)의 경의(經義)를 따르고 있습니다. 귀국의 왕인(王仁)이 오경(五經)을 전래해 주어 비로소 유도(儒道)의 교의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준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서쪽 중국으로 학문을 배우도록 보냈습니다.

龍門曰 仁齋徂徠 非左袓陽明象山者也 各有所見 別立門戶矣 其學術見所著之書 今不具悉焉 吾邦儒者 有崇尙二家者 有尊重程朱者 爲王陸學者甚少 天朝搢紳君子 至今從漢唐經義 是貴國王仁携五經來 始闡儒道之餘敎也 其後擇俊秀者 西學于中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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