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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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습유(古語拾遺)

편저자 : 인베노 히로나리(斎部 広成)   |   번역자 :   |   유형 : 기타( 역사서 )   |   쪽수 : 2   |   총권수 : 1권
고어습유(古語拾遺) 이미지 1고어습유(古語拾遺) 이미지 2

이중천황(履仲天皇) 때 왕인이 천황 창고의 출납을 맡았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가루시마 도요아키라(輕嶋豐明 : 應神天皇)의 조정에 이르러 백제 왕이 박사 왕인을 바쳤으니 고우치노 후미노오비토(河内文首)의 시조이다. 하다노키미(秦公)의 선조인 궁월(弓月)이 120현의 백성을 이끌고 귀화하였다. 아야노아타이(漢直)의 선조 아지사주(阿知使主)가 17현의 백성을 이끌고 조공하러 왔다. 진, 한, 백제의 귀화한 백성은 각기 수만 계획으로 포상하기에 충분하다. 모두 사당을 가지고 있으나 미처 폐백을 준비하는 예가 없었다. 후에 이와레 와카자구라(磐余稚櫻 :履仲天皇)의 조정에 이르러 삼한이 공물을 바치는 거이 세대가 바뀌어도 끊이지 않았다. 재장(齋藏)의 옆에 내장(內藏)을 세워서 나누어 천황의 물건을 보관하였다. 이어서 아지사주와 백제박사 왕인에게 명하여 그 출납을 계산하도록 하고 비로소 다시 장부(藏部)를 정하였다.

至於輕嶋豐明朝 百濟王貢博士王仁 是河内文首始祖也 秦公祖弓月 率百廿縣民而歸化矣 漢直祖阿知使主 率十七縣民而來朝焉 秦漢百濟内附之民 各以萬計 足可褒賞 皆有其祠 未預幣例也至於後磐余覆仲天皇稚櫻朝 三韓貢獻 奕世無絶 齋藏之傍更建内藏 分收官物 仍令阿知使主與百濟博士王仁 計其出納 始更定藏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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