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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교빙지(交聘志)9

편저자 : 한치윤   |   번역자 :   |   유형 :   |   쪽수 : 일본(日本)과 통교(通交)한 시말(始末)   |   총권수 : 70권
해동역사(海東繹史) 교빙지(交聘志)9 이미지 1

한(漢)나라 이래로 왜(倭)와 한(韓)이 대방(帶方)에 속하였으며, 왜와 한이 같은 등급이었다. 왜왕 무급진(武及珍)이 일찍이 지절도독왜백제신라임라진한모한제군사(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羅秦韓慕韓諸軍事)라고 칭하였는데, 신라나 백제 등 여러 나라의 군사들이 언제 일찍이 왜왕의 절제(節制)를 받은 적이 있었던가. 이는 대개 스스로 과시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인호(隣好)를 끊지 않았으며, 교빙(交聘)을 빠뜨리지 않았다. 서적을 전한 것은 진손왕(辰孫王)에게서 시작되었고, 유교가 일어난 것은 왕인(王仁)에게서 시작되었는바, 기용(器用)이나 공기(工伎)에 이르기까지 모두 백제로부터 전수받았다. 성무천황(聖武天皇)은 이를 가리지 못하고 고씨(高氏)와 더불어서 형제(兄弟)의 관계를 맺었다. 그러면서도 유독 발해국을 세운 대씨(大氏)가 조카[甥]로 칭한 것은 비난하였다. 그러나 발해의 국서(國書)에서도 역시 서로 대등한 인국(隣國)의 예를 고집하였다. 이런 것은 사신(使臣)들의 장고(掌故)로써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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