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청비록(淸脾錄)
왜시(倭詩)의 시초 : 일본(日本) 응신천황(應神天皇) 때에 백제(百濟)에서 아직기(阿直岐 백제의 학자)를 보내어 《역경(易經)》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ㆍ《산해경(山海經)》을 바치자, 황자(皇子) 토도아(菟道雅)가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응신천황이 아직기에게 ‘그대보다 나은 박사(博士)가 있는가?’ 하자, 아직기가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나보다 낫습니다.’ 하니, 천황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왕인을 부르므로, 백제의 구소왕(久素王) 상고하건대, 백제에는 구소왕이 없었으니, 이는 구모신왕(久慕辛王)의 와전인 듯싶다. 그러나 구모신왕은 중국의 유송(劉宋: 유씨(劉氏)의 송 나라, 즉 남조송(南朝宋)의 별호) 세대에 해당하고, 응신천황은 동한(東漢)의 말엽에 해당한다. 만일 응신천황의 세대가 옳다고 본다면 백제의 구수왕(仇首王)과 고이왕(古爾王) 두 왕의 연간에 해당하므로, 고(古)와 구(久)는 음과 뜻이 서로 가깝고 또 동사(東史)에 의하면 고이(古爾)를 고이(古尒)로도 썼으므로, 이(尒)와 소(素)가 혹 서로 비슷하게 보여서 구소(久素)로 와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왕인을 보내자 왕인이 천가문(天家文 천자문(千字文)과 같음)을 갖고 오므로 황자 도아가 또 그를 스승으로 섬겨 유교(儒敎)가 비로소 행해졌다. 왕인은 본디 한 고제(漢高帝)의 후예로 난파진가(難波津歌)와 인덕보조송(仁德寶祚頌)을 지어 가부(歌父)라 이르고 육오송녀봉갈성왕가(陸奧宋女奉葛城王歌)를 지어 가모(歌母)라 일렀다.
倭詩之始 : 倭應神天皇時。百濟遣阿直歧。獻易經,孝經,論語,山海經。皇子菟道雅師之。天皇問直歧曰。有勝汝之博士耶。對曰。有王仁者。勝於我。天皇遣使百濟。徵王仁。百濟久素王 案百濟無久素王。似是久慕辛王之譌。肰久慕辛王。當中國劉宋之世。應神天皇。當東漢末世。若以應神之世爲正。則百濟仇首古爾二王之間。古與久音義相近。東史古爾。或作古厼。厼與素或相近。因譌爲久素耶。 送王仁。持千家文而來。道雅又師之。儒敎始行。仁本漢高帝之後。作難波津歌。仁德寶祚頌。謂之歌父。陸奧宋女奉葛城王歌。謂之歌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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